2022년 6월 7일 화요일

염불할때 잡념 끊는 방법 현대불교신문(2004년3월24일,18면)

 자재만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6)

염불할때 잡념 끊는 방법
현대불교신문(2004년3월24일,18면)


경에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어찌하여 어떤 놈이 나의 옷을 입고, 중인 체하면서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짓을 하느냐”하셨습니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가듯 인간도 수명을 다 살면 이 거짓 몸뚱이라는 허물을 벗고 나가는 놈(부처님은 영체라 하심)이 있습니다. 그 영체는 지은 업을 따라 가는 곳이 있지요. 

지은 죄가 지중하면 지옥에 떨어져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는데, 이 몸뚱이가 받는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윤회는 결코 방편설이 아닙니다. 실지로 윤회는 사실이며 불교의 중심신앙입니다. 연기법에 기초한 엄연한 사건들입니다. 이를 부인하는 말은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대 망어죄로서 삼중고(눈, 귀, 입의 기능이 죽음), 사중고(삼중고에 코를 더 포함)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 과보를 면하지 못합니다. 이는 사실이라는 것을 온 천하에 알립니다.

나는 지금까지 당당히 부처님에 대한 부분만을 두어달 남짓, 불교역사 앞에서 말씀한 바 있습니다. 400년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외쳤듯, 나는 붓다의 무량광,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을 석명(釋明)하는 삼신설(三身說)을 설했습니다. 조만간 나의 미증유의 법설에 동의하는 날이 올 겁니다.

도올 김용옥씨가 모 TV 방송 매체를 통해 사정없이 부처님 가르침을 매도 폄훼하는 망어를 했어도 누구 하나 단칼에 절복시키는 큰스님이 없다 합니다. 그의 변재와 학문을 당해낼 수 없어서도 그러하겠지만, 수행의 깊이가 적어도 대보살지에 올라, 중생이 육도에 전생윤회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없다면 도올을 항복시킬 수 없습니다.

삼봉 정도전의 <불씨 잡변>이 나올 때처럼, 사자후하는 이가 없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우리 불교는 서럽게도 억압당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동안 지면을 통해 불교의 몸통 중에 겨우 머리 부분만을 대강 소개했다고 봅니다. 약 1년간 연재해서 왜곡된 부처님 말씀을 살펴볼까 했으나, 이제 인연이 다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염불선을 간략히 소개만 해 드리겠습니다.

염불시에는 아미타불을 칭명함이 좋으나 관세음보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은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선 아미타불만 가지고 말씀하지요.

정토삼부경 중 가장 짧은 <아미타경>을 일독한 후 ‘아미타불 무량겁 멸진진언’(108편)을 한 후, ‘나무아미타불’을 간단없이 부르십시오. 일념이 안되고 잡념이 끊이지 않는데, 이것을 막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집중하려고 하면 어려운 법이어서 둘로 나눠야 합니다. 

즉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하시고 생각으론 아미타불께 귀의하고 참회하며 발원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처음엔 이게 잘 안되나 노력하면 됩니다. 이 공부가 깊어지면 일념이 되어 염불삼매에 진실로 들게 됩니다. 

나중에는 더욱 깊은 경지에 들게 되며, 드디어 극락 왕생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죽을 때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그런 불행은 결정코 없을 것입니다.




언론보도글/삼계의왕 석가모니불/염불할때 잡념 끊는 방법

 자재만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5)

삼계의 법왕 석가모니불
현대불교신문(2004년3월10일,18면)

완전해탈 하려면 三身 갖춘 붓다 돼야

나는 10여년전까지 유가, 도가의 걸출한 인물들, 제2의 예수라는 어느 종교인, ‘부처의 화신’이라는 기인들과도 깊이 사귀면서 그들의 내면세계를 검증한 바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존재의 근본인 빛(性光)을 보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소식을 알아 공, 무아의 겁외가를 부를 줄 아는 수준(성중, 아라한)까지 이른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임을 잘못해(사음계를 파함) 공부인 영가가 빙의되어 외도로 빠진 아까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상당한 신통이 벌어진데다 고금의 철학, 종교사상에 깊은 조예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통은 해탈을 얻는데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오히려 큰 업을 짓습니다.

대열반, 완전해탈을 이루려면 삼신(三身)을 갖춘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무량광으로 이뤄진 자기 불신을 얻어야 합니다. 이 거짓 몸 속의 주인공 영체는 빛덩어리로 정화돼야 합니다.

무수, 무량겁을 마음 공부, 보살행을 하지 않고선 이리 될 이가 없습니다. 아뢰야식도 녹고 9식(10식) 모두가 빛이 됩니다. 그래서 이 몸 속에 있는 4영체가 자기 불신 빛덩이와 격을 같이해서 이승을 마칠 땐,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불과를 증하려면 우선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무량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경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상품상 보살이 사람으로 와서 붓다가 되는 경계입니다. 

<능엄경>에서 5음이 녹으면 눈은 800공덕을 얻어 윤회안 세계를 본다 했으나, 그런 대아라한도 무량광은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기 불신을 얻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법왕중의 법왕이십니다. 진점겁전에 불과를 이루신 삼계의 왕이십니다. 그후에도 여러번 불과를 증하시고 보살로도 살아가신 지존이십니다. 남섬부주의 교주이십니다. 

무아 속 절대세계에 청정법신(眞佛)을 두고 당신의 원만보신(佛身)은 적정불계에 계십니다. 3차원 세계에 익숙한 중생들의 알음알이로는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지니십니다. 석가모니불의 법신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합니다. 모든 붓다의 법신이 흡수된 대지(大智)의 광명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거기 법신의 당처를 촌보도 떠남 없이 인도 영축산 영산궁에 계시면서 <법화경> ‘종지용출품’에서 볼 수 있듯, 수많은 상주보살들을 교화하고 계십니다. 남섬부주에 붓다 이룰 선근 종자가 오면 여기서도 가끔 주(住)하십니다. 

당신 계신 곳 ‘사바가 곧 적광토’라는 말이 그래서 맞습니다. 당신을 모시고 간절히 찾는 이가 있으면 백천만억 화신을 나툴 수 있기에 화신을 내어가십니다.

남섬부주에 변화신으로 현신하실 때는 항상 깔끔히 머리 깎으시고 108가사를 수하십니다(다른 붓다들은 32쪽 가사임). 일거수 일투족은 자비의 극치이십니다. 법(연기, 진리) 자체이십니다.

<화엄경>에서 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들은 오히려 미흡할 정도로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대법왕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곡이 심한 우리 불가에서조차 왜 ‘석가모니불’을 염하지 않는지 슬픈 일입니다.


언론보도글 / 염불선/붓다는 법신.보신.화신

 자재만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4)

붓다는 법신·보신·화신
현대불교신문(2004년2월25일,18면)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수기(授記) 주신 대목을 우린 주목해야 합니다. 영산당시의 부처님 10대 제자 절반은 당시 상품 보살지에 오른 큰 어른들이었습니다. 

이미 두루 대아라한과를 뛰어 넘어, 상품 보살지에 이른 제자들에게 부처님은 각각 수기하셨습니다. 수 많은 생을 통해 보살도를 마치면 붓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입니다.

오늘은 중차대한 법문을 하겠습니다. 불교의 핵 중에서도 중핵이 되는 부분입니다.

붓다는 삼신(三身)을 갖추십니다. 삼신을 구족 못하면 붓다가 아닙니다. 삼신은 중국 당의 법상종, 천태종에서 인정했던 법신, 보신, 화신을 두루 말합니다. 

상품상(上品上)의 보살이 사람 몸을 받아와 불과를 증하게 되는데, 불과를 이룬 붓다는 자기 불신(삼신설에서 원만보신)을 얻고 나아가 청정법신을 무아 절대계에 갖습니다. 여기가 대열반, 완전 생사해탈입니다. 공엔 안팎이 없습니다. 마음엔 안팎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과 관련, 삼신을 말씀하겠습니다. 삼신은 무량겁전에 불과를 증하셔서 불호가 정법명왕, 보살명은 관세음입니다. 

관음보살님은 다른 붓다들처럼 청정법신을 무아속 절대계에 두시고, 원만보신을 나투어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불신(보신)은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진 소위 32상 80종호 그 이상의 아름다운 상모입니다. 그 분이 남섬부주 인연처에 오실 땐 자모(慈母)의 모습으로 변화하십니다. 

그 변하신 모습은 머리엔 아미타불을 정대한 화관을 쓰시고, 목엔 영락을 두르십니다. 하얀 실크 옷에 가끔은 버들가지를 드신 여인의 모습입니다.

어느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와, 지금 우리가 보는 ‘관음상’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관음보살은 붓다이십니다. 중생을 교화하러 보살신으로 나투신 것입니다. 붓다는 무량광이라고 하는 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 졌기에, 본다는 것은 붓다의 경계에서 가능합니다. 

당신은 남섬부주 인연중생을 교화해서, 서방정토로 인도하시고저 때론 32응신을, 때론 한 곳에서만도 1천의 분신을 나투십니다. 

적정상태에 드시어, 한 걸음도 당처를 떠남이 없이 14무애력 4불사의 덕, 8만4천 신통자재묘력으로 백천만억 화신을 내어, 당신을 찾는 고해 중생의 원을 들어주십니다.

<금광명최승왕경>을 보면, 모든 부처님에겐 법신, 응신, 화신이라는 몸이 있다 하셨고, 법신은 참으로 진실하게 있는 것이며, 응신과 화신의 근본이 된다 하셨습니다. 

<열반경> <반야경> <능가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상주하는 불신 곧 법신(청정)을 말씀하시고, <법화경> 수량품등에선 보성론(寶性論)에서의 보신, 화신을 말씀하신 겁니다.

상품상의 보살이 정토에서 정진 공부해서 바로 불격을 갖추기도 합니다. <화엄경>의 10통 10인 10정을 구족합니다. 그러나 불신을 얻어 완전 붓다가 되려면 남섬부주로 와야 됩니다.

억겁의 업장이 녹고, 다생의 습, 악기가 다하고 악연이 단절되고, 삼독 번뇌가 멸진되어, 마음이 불신의 빛깔처럼 여름 한 낮 태양 속 빛처럼 되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자기 불신을 얻고, 청정법신까지 갖추게 되면 이제 영겁을 환희 자체인 붓다의 삼매, 적정삼매를 수용합니다. 

그러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청정 ‘빛’이기에, 죽을 수 없습니다. 여기가 완전 초월, 대 열반입니다. 삼계의 법왕입니다. 항사의 신통, 지혜, 자비 모두를 다 갖춥니다.




2022년 5월 27일 금요일

자재만현스님의염불선 이야기(3) 아라한 보살의 경지 현대불교신문(2004년2월11일,18면)

 자재만현스님의염불선 이야기(3)

아라한 보살의 경지
현대불교신문(2004년2월11일,18면)


인간이 자력으로 해탈한 자리

부처님께서는 성자의 위계를 아라한-보살-불로 보십니다. 인간은 사생결단의 발심으로 정진해 가면 해탈의 자리인 아라한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력 수행의 한계입니다.

아라한도를 깨친 이라면 칠흙같이 깜깜한 암굴에서 햇빛의 굴밖 세상으로 갑자기 벗어났을 때의 경지, 천지가 뒤집혀진, 언설 가지고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생각 따위가 미처 들어갈 여지가 없는, 공(空)한 경계를 맛보았을 겁니다.

소위 강하게 자성(自性)이 드러난 경계인 견성의 경지입니다. 남-북방의 여러 수행법으로 일체가 공(空)이요 무아(無我)임을 확실히 깨친 수행인이 더욱 보임공부를 잘 해가면, 아라한의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습니다. 

아라한과를 이룬 성자의 오라(aura), 영체의 빛은 보름달 속 밝은 부분의 색(은백색)과 비슷합니다. 이것이 좌탈입망이 가능한 아라한 성자의 경지입니다.

그러나 아라한 성자라 해도 견성한 후에 청정계율, 특히 사음계를 파하면 절대 안됩니다.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는 큰 구업 역시 범해선 안됩니다. 대신 보임을 잘 해나가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납니다. 윤회 밖 성중(聖衆) 하f늘 상품(上品)까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성중 하늘을 지나면 도솔천 내원궁, 곧 미륵불이 교주인 도솔정토가 있습니다. 불과(佛果)를 이룬 대성자의 부모님들이 주로 태어납니다. 

다시 그 위가 아미타불의 정토 극락세계입니다. <아미타경>에서 1일에서 7일 동안 일심불란으로 칭명염불할 수 있어야 왕생한다는 극락입니다. 

팔지(八地) 이상의 보살과를 증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 보살과를 이루려면 <화엄경>의 10주, 10행, 10회향의 보살행을 닦아가면서 다음 경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첫째 시방세계 일체가 선명히 드러나는 해인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금강석 같이 일체를 여읜 마음은 청정해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녹아져 햇빛처럼 밝습니다. 둘째,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방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공부 경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보살의 영체는 요즘 절기로 봐서 아침 8시경 태양의 빛깔입니다. 넷째, 마음은 삼독의 번뇌를 벗어나 중생에게 기쁘게 회향할 줄 아는 이타행 보살심이 투철합니다. 

가령, 나는 살아 남아서 눈 먼 부모님을 봉양해야 한다며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처절한 절규를 들었다면, 자기가 대신 처형받을 것을 자원할 정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화엄경> 10지품 말씀처럼 2명의 금강역사(신장)가 호신하게 됩니다.

극락에 왕생한 이는 불퇴전의 경지입니다. 성불을 보장받는 위(位)입니다. 이곳에 왕생할 정도로 청정하고 수행이 깊은 이는 남자로 바뀌어 태어납니다. 

그리고 보살과를 이루는 데는 부처님의 타력이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염불이 보살과를 증할 수 있는 소중한 수행법인 이유입니다.

미타 삼부경 등에서 볼 수 있듯, 염불선은 경전상의 근거가 분명하고 3천년 간 검증을 받은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염불선에도 선지식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이 남섬부주는 외도의 그물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는 위험한 늪이기 때문입니다.





자재만현스님의염불선 이야기(2) 부사의한 빛, 무량광 그리고 무량수 현대불교신문(2004년1월21일,18면)

 자재만현스님의염불선 이야기(2)

부사의한 빛, 무량광 그리고 무량수
현대불교신문(2004년1월21일,18면)



무량광은 지혜이자 자비

‘이 마음의 곧 부처’라는 가르침이 보편화되어 있는 이 시대에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다면, 우리는 결정코 팔정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붓다의 자비, 원력을 믿고 열심히 염불해야 합니다. 

죽어서 가져가지 못할 재물, 명예만을 좇는 범부짓일랑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소아(小我)를 버리고 선근공덕을 쌓고 보살도를 행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를 다하고, 나라와 세계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외도(外道)를 멀리 하고 계율은 목숨같이 받들어 지켜야만 합니다.

독자 여러분, 붓다의 대해로 드는 관문이 무량광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붓다의 경계입니다. 이제 무량광을 보아야만 붓다의 진신(報身)을 친견하게 됩니다. 

이 부사의한 빛덩이를 봄이 없이 ‘나도 붓다를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이기에 삼세의 여래가 하나입니다. 

무량광으로 이뤄진 불신에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냅니다. 이 무량광은 지혜 자체요 자비 자체가 됩니다. 청정 자체여서 부처님의 8만4천 신통과 삼매의 원인이 됩니다. 

외도를 항복받는 힘이기도 합니다. 무량광의 기능은 실로 불가사의 합니다. 중생의 눈앞에 있지만 그 천문학적인 광도를 지닌 무량광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들은 중생을 교화하실 때 화신(응화신, 변화신)으로, 그것도 비몽사몽, 꿈에 나투시어 이끄십니다.

무량광은 ‘무아 속 절대계’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즉 진불에 근거합니다. <금광명최승왕경> 제2권에 “화신과 응신은 이름을 붙여 그냥 있다 하는 것이요, 법신은 참으로 진실하게 있다는 것이다. 법신은 앞의 두 몸(화신과 응신)을 위하여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경에서 말하는 800 눈(眼)의 공덕을 지은 수행자도 무량광만은 볼 수가 없습니다. 당대에 붓다 이룰 부처님 아들만이 봅니다. 

억겁의 업장과 습기가 녹아 없어져야 하고, 탐진치 삼독 등 번뇌가 녹아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부처님 위신력을 입어야 가능합니다. 

<화엄경>에서 발바닥, 발가락, 양 무릎, 눈썹 사이 등 네 곳에서 부처님의 방광을 볼 수 있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뤄진 불신이 필요에 따라 방광하는 것입니다. 

<대반야경>에선 무려 41군데 몸 부분 부분에서 방광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열반경>에선 “부처님 입으로부터 가지가지 광명을 내어, 삼천대천 세계를 비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대승경전에서 많은 붓다들이 계심을 볼 수 있는데도, ‘마음의 부처’요 ‘마음 밖에 부처를 구하는 것은 사마외도’라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空)엔 안팎이 따로 없습니다.

<열반경>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에 나오는 불성(佛性)이라는 말은 부처될 수 있는 가능성, 종자(種子)를 뜻합니다. 

생각 이전의 마음, 본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마음자리가 드러나는 견성(見性)이 바로 성불(成佛)이 아니라, 붓다를 이루어 가는 기나 긴 여정의 첫 관문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보물창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품자리, 내 주인공을 찾아 마음 속에 잠복해 있는 보물들을 개발해 낼 수만 있다면 누구나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생은 견성해서 자유와 지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윤회의 속박을 벗어나 해탈 오계(悟界)에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재만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1) -佛身은 빛덩이로 된 존재 현대불교신문(2004년 1월7일,18면)

 자재만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1)

-佛身은 빛덩이로 된 존재
현대불교신문(2004년 1월7일,18면)


붓다,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신다.

자재만현은 먼저 오체투지하면서 삼가 삼계의 지존이시고 구원실성하신 최초불 석가모니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시고 보살들의 상수이신 대지문수 사리보살님께 귀명하나이다.

<화엄경> 십지품에 “보살이 제9 선혜지(善慧地)에 오르면 큰 삼매의 힘으로 부처님(化身)들을 뵙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다”는 말씀을 접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상주불멸하십니다. 붓다 이룬 분들이 계시는 곳이 있습니다. 다음은 약사 부처님의 법문입니다.

“부처님은 마음 밖에 계신 것도 아니고 마음 안에 계신 것도 아니다. 무아속 절대계에 계신다. 마음은 안과 밖이 없어 움직이지 않아 여여하듯, 부처님 또한 그리 계신다. 다만 중생들이 분별하여 있다 없다 할 뿐. 부처님들은 무아속 절대세계에 계신다.”

독자 여러분, 나는 그동안 무던히도 오랜 세월 동안 ‘과연 마음이 부처인지(心卽是佛), 마음의 본성을 깨치면 부처님이 되는 건지(見性成佛), 부처님이 되어 열반에 든 후에 어디로 가는지, 공(空) 자체가 되어버리는 건지’ 이를 화두로 삼고 ‘주인공, 마음’을 깨치고자 줄곳 씨름해 왔습니다.

드디어 나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이끌려 무아속 삼매에 들 수 있었습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 대천세계가 비었어라. 먼지 하나 티끌 하나 없는 공의 세계, 맑고 깨끗한 청정 자체.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좋구나 좋다, 좋구나 좋아. 본래부터 가진 것 없어 있는 그대로가 무아로다. 있다 없다. 

분별심 놔 버리면 무아 속 절대계의 빛인 것을 무아속 삼매의 환희는 이 세상 어떤 쾌락, 말초신경의 쾌감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아속 삼매, 적정삼매는 억겁의 공덕과 수행을 쌓아 들게 되는데, 처음에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삼매에 들기 전 ‘무량광(無量光)’이라는 부처님 빛을 보게 됩니다. <열반경>에선 이를 ‘열반광’이라 했고, 문수보살 관련 경전에서는 ‘억종광명(億種光明)’ <지장십륜경>에선 ‘백종오색광명(百種五色光明)’, <미타 삼부경>에선 무량광이라고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빛덩이는 소위 견성(見性)할 때 경계가 뒤집혀 온통 드러나는 자성광(自性光)과 비교할 때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무량광은 또한 ‘자연의 빛(태양광)’과도 다릅니다. 

안팎을 비춥니다. 광도로 말하면, 여름 한낮 햇빛 속,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태양 광도의 수 천배가 된다고 할까요?

부처님 되신 분은, 이 육신과 육신 속 자기의 본체 외에 무아속 절대계, 곧 불계(佛界)에 자기 불신(佛身)을 갖게 되는데, 그 불신은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덩이로 이뤄져 있습니다. 

붓다는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덩이를 하나 더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을 교학에선 보신(報身) 혹은 법신(法身, 금광명경)이라 합니다. 금강불괴의 진신입니다. 

붓다는 영원불멸하는 ‘빛의 몸둥이(불신)’를 지니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습니다.

자재만현스님은 1960년 부산 선암사에서 율사인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 통도사 경봉 선사 문하에서 공부 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 포교, 재무부장 등을 역임하고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전국에서 설법했으며 해동불교대학 학장을 맡아 재가자 포교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춘천 현지사 회주로서 후학 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붓다·보살을 낼 수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 법보신문, 2003. 11. 05 )

 붓다·보살을 낼 수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 법보신문, 2003. 11. 05 )



춘천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의 세수는 69세이다. 춘천댐이 자리한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현지사는 스님들 몇 분이 수행하는 아담한 절로 2001년에 새로 지은 현대식 사찰이다.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은 1960년 부산 선임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만현스님은 최근 불교방송에서 법문을 설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만현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포교 교무재무부장 등을 지냈으며 해동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또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공부한 만현 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늘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에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세기 인도에 라마크리슈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궁극적 경지를 두루 체험한 사람으로 신비체험 사마디,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던 천재적인 수행자이자 뛰어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수행을 거친 뒤 “모든 종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또 유교의 즉물궁리 卽物窮理, 힌두교의 요가수행, 이슬람교의 수피즘, 유태교의 카발리즘 등으로 초인 超人 도인의 경지를 이룬 분들은 “모든 존재속에는 생명의 빛 곧 진리 신성 神聖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또 자기존재의 빛 곧 나는 완전무한절대라는 것이 참된 명상을 통해 드러난다고 합니다. 초인들은 500년에서 천년, 아니 그 이상을 장생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며 생사 生死 까지도 스스로 조절하면서 영생 永生과 해탈을 성취했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불자들이 다른 종교의 정체성을 간과한다면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입니다. 남방불교 쪽의 위파사나 수행법. 북방대승 불교권의 여러 종파와 관법수행, 선불교의 간화수행법을 비롯해 밀교의 명상.탄트라수행 또한 깨달음과 더불어 신통까지 입어나기도 합니다.

“종교의 근본은 모두 같다?”

그러나 불교는 완벽한 생사 生死의 해탈 解脫. 곧 대열반 大涅槃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혹 어리석은 자는 앞에 소개한 종교들도 우리가 그동안 공부했던 불교와 다를 게 없는 것 같고 큰 신통까지 얻는 종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큰 신통을 얻을 수 있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모든 종교가 선 善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법문 처음에 이야기한 ‘라마크리슈나’라는 종교인 역시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지향점이 같다고 말합니다.

영겁이 지나도 멸하지 않아

그러나 붓다의 실체 實體 . 불신 佛身의 정체를 곧 부처님의 위대한 진면목을 잘 아는 불자라면 저들 종교와 불교를 같은 차원에 놓고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구조상 생멸 生滅이 다한 본원 本源에로 증입 證人, 해탈까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아라한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앞에 소개한 여러 종교수행으로도 아라한 급의 열반, 신통까지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사부대중 여러분, 불교의 위대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무아사상이기 때문입니까. 힌두교에서도 연기사상과 유사한 사상이 존재하고 그들이 드는 삼매 三昧 에서도 무아 無我 와 유사한 것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대승 불전 佛典들 때문입니까. 십방삼세 十方三世를 관통하는 광원 , 심오한 교리 때문입니까. 물론 완벽한 교리와 불전들 때문에 훌륭한 종교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불교에서만이 ‘보살’이란 거룩한 성자가 나오고 성자 중의 성자인 법왕法王 ‘붓다’가 나온다는 사실을 들어 위대한 종교, 불교의 위대한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불교에는 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설해져 있습니다. 또 영겁을 다하도록 멸도 할 수 없는 길 道이 있어서 또한 위대합니다.

붓다 만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 佛身을 지니십니다. 그래서 붓다는 변조광명이기도 합니다. 그 빛은 백 천만겁의 화신 化身을 낼 수 있는 능력, 지혜를 지닙니다.

붓다는 청정이요, 자비요, 해탈이요, 대 열반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항상 최고의 삼매 三昧, 삼매 중의 삼매 ‘대적광삼매’에 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붓다는 허공에도 땅 속에도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도 밖도 아닙니다. 붓다는 무아 無我속 절대계에 여여 如如히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나는 여자인 걸’, 내 나이가 6, 70이나 먹었는데 무슨 수행을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 버리고 사람 몸으로 태어났을 때 발심. 분발해서 마음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수행은 참회로부터
고통이 떠난 자리가 곧 극락이요, 번뇌망상에 시달리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라고들 합니다. 온갖 근심, 걱정, 불안 속에 사시는 사부대중 여러분. 금생도 내생도 복되게 살려면 지금 먼저 전생에 지은 업을 참회해야 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를 염송하십시오. 또 시간을 조금 더 내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명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반드시 지키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