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붓다·보살을 낼 수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 법보신문, 2003. 11. 05 )

 붓다·보살을 낼 수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 법보신문, 2003. 11. 05 )



춘천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의 세수는 69세이다. 춘천댐이 자리한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현지사는 스님들 몇 분이 수행하는 아담한 절로 2001년에 새로 지은 현대식 사찰이다.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은 1960년 부산 선임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만현스님은 최근 불교방송에서 법문을 설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만현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포교 교무재무부장 등을 지냈으며 해동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또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공부한 만현 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늘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에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세기 인도에 라마크리슈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궁극적 경지를 두루 체험한 사람으로 신비체험 사마디,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던 천재적인 수행자이자 뛰어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수행을 거친 뒤 “모든 종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또 유교의 즉물궁리 卽物窮理, 힌두교의 요가수행, 이슬람교의 수피즘, 유태교의 카발리즘 등으로 초인 超人 도인의 경지를 이룬 분들은 “모든 존재속에는 생명의 빛 곧 진리 신성 神聖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또 자기존재의 빛 곧 나는 완전무한절대라는 것이 참된 명상을 통해 드러난다고 합니다. 초인들은 500년에서 천년, 아니 그 이상을 장생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며 생사 生死 까지도 스스로 조절하면서 영생 永生과 해탈을 성취했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불자들이 다른 종교의 정체성을 간과한다면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입니다. 남방불교 쪽의 위파사나 수행법. 북방대승 불교권의 여러 종파와 관법수행, 선불교의 간화수행법을 비롯해 밀교의 명상.탄트라수행 또한 깨달음과 더불어 신통까지 입어나기도 합니다.

“종교의 근본은 모두 같다?”

그러나 불교는 완벽한 생사 生死의 해탈 解脫. 곧 대열반 大涅槃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혹 어리석은 자는 앞에 소개한 종교들도 우리가 그동안 공부했던 불교와 다를 게 없는 것 같고 큰 신통까지 얻는 종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큰 신통을 얻을 수 있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모든 종교가 선 善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법문 처음에 이야기한 ‘라마크리슈나’라는 종교인 역시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지향점이 같다고 말합니다.

영겁이 지나도 멸하지 않아

그러나 붓다의 실체 實體 . 불신 佛身의 정체를 곧 부처님의 위대한 진면목을 잘 아는 불자라면 저들 종교와 불교를 같은 차원에 놓고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구조상 생멸 生滅이 다한 본원 本源에로 증입 證人, 해탈까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아라한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앞에 소개한 여러 종교수행으로도 아라한 급의 열반, 신통까지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사부대중 여러분, 불교의 위대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무아사상이기 때문입니까. 힌두교에서도 연기사상과 유사한 사상이 존재하고 그들이 드는 삼매 三昧 에서도 무아 無我 와 유사한 것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대승 불전 佛典들 때문입니까. 십방삼세 十方三世를 관통하는 광원 , 심오한 교리 때문입니까. 물론 완벽한 교리와 불전들 때문에 훌륭한 종교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불교에서만이 ‘보살’이란 거룩한 성자가 나오고 성자 중의 성자인 법왕法王 ‘붓다’가 나온다는 사실을 들어 위대한 종교, 불교의 위대한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불교에는 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설해져 있습니다. 또 영겁을 다하도록 멸도 할 수 없는 길 道이 있어서 또한 위대합니다.

붓다 만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 佛身을 지니십니다. 그래서 붓다는 변조광명이기도 합니다. 그 빛은 백 천만겁의 화신 化身을 낼 수 있는 능력, 지혜를 지닙니다.

붓다는 청정이요, 자비요, 해탈이요, 대 열반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항상 최고의 삼매 三昧, 삼매 중의 삼매 ‘대적광삼매’에 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붓다는 허공에도 땅 속에도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도 밖도 아닙니다. 붓다는 무아 無我속 절대계에 여여 如如히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나는 여자인 걸’, 내 나이가 6, 70이나 먹었는데 무슨 수행을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 버리고 사람 몸으로 태어났을 때 발심. 분발해서 마음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수행은 참회로부터
고통이 떠난 자리가 곧 극락이요, 번뇌망상에 시달리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라고들 합니다. 온갖 근심, 걱정, 불안 속에 사시는 사부대중 여러분. 금생도 내생도 복되게 살려면 지금 먼저 전생에 지은 업을 참회해야 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를 염송하십시오. 또 시간을 조금 더 내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명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반드시 지키면서 말입니다.



염불선, 거룩한 성자되는 淨業수행 (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염불선, 거룩한 성자되는 淨業수행

(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견성은 부처되는 공부의 시작일 뿐입니다. 견성한 이라도 보임과정에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불·보살의 불법을 모독하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춘 뒤 20여년간 수행에만 매진해 온 춘천 현지사(033-243-1787) 회주 만현 滿顯스님. 

3년 전부터 간간히 불교방송을 통해서만 설법하던 만현 스님의 법문이 본지 435호 ‘지상 백고좌’에 소개되자 많은 출·재가 수행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방송 설법이 나갈 때마다 보였던 이러한 반응은 ‘견성 즉 성불 見性 則 成佛’이라고 하는 선종의 불문율에 대해 과감히 다른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만현 스님의 성불 成佛에 대한 견해는 독특하다. 

수행자가 남·북방의 다양한 수행법으로 깨달아도 아라한 이상은 증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진정한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보살 지위에 이어 불신 佛身과 하나되는 더욱 더 어려운 공부과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10월 11일 현지사에서 스님을 뵙고 염불선의 이모저모를 여쭤보았다.

문)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선종의 ’견성 즉 성불‘이란 주장과 상이한 말씀인 것 같은데요.

“나는 견성은 붓다 이루는 공부의 시작이라고 확언합니다. 경계가 확 뒤집혀 일시에 진여자성이 들어났다 필요조건 해서 억겁다생에 지은 업장이 녹는 게 아닙니다. 천만생을 내려오면서 익힌 악습, 악기가 하루 아침에 멸진되지 않습니다. 

탐진치3독의 뿌리도, 착심 着心도 그렇습니다. 다생의 악연 역시 이를 단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즉 진여본성이 잠깐 드러났다 해서 붓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계 佛界 즉, 무아속 절대세계에 금강불괴의 자기 불신 佛身,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 붓다를 얻어야 불 佛입니다. 이게 충분조건입니다. 이 일은 삼천대천 제불세존의 큰 위신력이 아니고는 불능입니다.‘


문)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교학상의 근거는 무엇인지요
“<종경록>에 ‘서천의 28대 조사중 1인도 견성하지 않은 분이 없다’했습니다. 그럼 마명, 용수보살이 이미 견성했는데 왜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염불정업 念佛淨業을 닦았겠습니까? 

견성이 곧 불 佛이라 하면, 불은 가는 곳이 달리 있습니다. 서방극락이 아닙니다. 서방극락은 보살, 보살 菩薩이상이 가는 곳입니다. 영명연수 선사가 간절히 왕생을 발원하고 염불수행을 겸했듯이 우리나라의 서산, 기화 선사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의 불교역사상 걸출한 대존자들인 인도의 무착, 세친보살을 위시해 중국의 혜원, 선도, 청량, 천태 스님과 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등 큰스님들도 왕생극락을 발원했습니다.”


문)성불하기 위해서는 염불선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뜻인가요
“참선을 통해 견성한 후 보임 補任을 잘 마치면 아라한 阿羅漢이 되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오를 수 없습니다. 반면, 염불선은 중생이 ‘보살’이라고 하는 거룩한 성자가 되는 훌륭한 정업 淨業수행입니다. 

따라서 염불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하고 공부중에 부처님의 청정하고 영롱한 무량광을 보아야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천만억 화신을 낼 수 있는 성자중 성자이십니다. 무아속 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재한 붓다라야 중생의 업장을 소멸하거나 지옥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문)염불선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간화선은 중·하급기 수행자에게는 어려운만큼 일심불란 一心不亂한 염불을 통해 드디어 삼매에 드는 염불선을 권합니다. 

구체적인 행법을 말한다면 먼저 정좌한 눈높이에서 1~2m앞에 작은 점을 찍어 둔 다음 두 눈을 든 채 시선을 점에 고정합니다. 

가능한 눈을 깜빡 거리지 않은 채 5~10분 정도는 가능·염불하되 관세음보살이나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 자신과 인연있는 불·보살을 칭명하면 됩니다. 

이때 시간이 지날 수록 일심불란의 상태가 무너져 마음이 도망가기 쉬운데, 눈앞에 염불하는 불·보살이 계시다고 관상염불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귀의, 참회, 발원의 염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번뇌망상이 자연히 사라져 마침내 염불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염불선을 통해 염불삼매를 얻은 후에도 보살 8지 이상의 지위에 이른 다음, 부처님의 무량광을 보고 불신 佛身과 하나되는 더욱 더 어려운 공부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문)요즘 스님들은 지옥과 극락, 불, 보살 등을 인간 내면의 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중생들은 있다, 없다를 분별합니다. 붓다는 허공에도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마음 속에도 마음 밖에도 아니 계십니다.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하늘의 태양이 저렇듯 존재하면서 만물을 비추고 있듯, 부처님 또한 빛으로 계시면서 삼천대천세계를 감싸고 계십니다. 

붓다께서 사바세계에 현신할 때는 32상 80종호를 보이십니다. 붓다권 내에 든 성자가 아니고는 그 분신의 빛의 강도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9지 선혜지 善彗地보살이 뵙는다는 부처는 화신불입니다. 

고통 떠난 마음자리가 극락이고, 번뇌망상 시달리면 거기가 지옥이라고 압니다. 그러나 지옥, 극락도 관념속 산물이 아니고 실제로 있습니다. 지옥은 영체세계의 남방 지장보살 궁 宮쪽에 있습니다.”

문)평상시의 염불선 공부 자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삼보에 귀의하고 청정하게 붓다의 계율을 지키면서 보살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선지식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해야 합니다. 

참회, 발원도 잊지 말고 다라니도 염송하면 좋습니다. 팔정도에 따라 살 수 있다면 극생도 내생도 복될 것입니다.”

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 내세요 ( 지상 백고좌,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 내세요
( 지상 백고좌,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오늘의 한국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하나 뚜렷하지 않습니다. 특히 승려들의 지계정신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크게 눈뜬 성자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을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 합니다. 지옥과 극락을 마음의 산물로만 봅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보살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은 시방법계를 싸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하신 부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무아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옥은 있습니다.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체세계의 남방 지장궁쪽에 있습니다. 제가 삼매에 들어보니,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중지옥, 무간지옥 중 그 한 군데만 소개할까요?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우리의 영체는 고통으로 까무러쳐서 만번 죽고 만번 살아날 정도입니다. 그 고통은 육신이 당하는 고통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오역죄, 사중죄를 지으면 보다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그곳의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인 겁(劫)으로 정해집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이 음행죄를 지으면, 즉 단 한번이라도 사음죄를 범했다면 일단 중지옥이나 무간지옥에 떨어집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전생에 선근공덕이 있어 겹겹이 몰려오는온갖 마장을 이겨내고 정진 잘 해서 크게 도를 깨친 이라 하더라도 음행을 저지르거나 불보살과 지옥 및 극락이 없고 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라고 부처님과 법을 모독, 능멸한다면 그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져 미래제가 다해도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불·보살님들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 선행을 하라’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을 가르칩니다. 궁극에는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여기에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수행이 구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 구제후 남을 제도하는 게 순서입니다.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어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무명의 껍질이 벗겨져 자성이 들어나 견성한 후 보임(保任)을 잘 마친 이가 아라한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라한의 성과(聖果)를 얻으면 윤회를 벗어난 세계에 납니다.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오를 수 없습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대아라한과를 증하셔서 윤회밖 성중 제 1하늘에 계십니다. 

자성(마음자리)이 드러나는 것은 간화선, 위빠사나, 밀교 수행으로도 가능합니다. 이때는 경계가 뒤집혀 온 세계가 훤하여 공이 됩니다. 그러나 깨침에도 강약이 있습니다. 목숨을 떼어놓고 사생결단해야만 자나 깨나 한결같은 오매일여 (寤寐一如)가 됩니다. 이러한 정도가 되어야 아라한이 됩니다. 그러나 붓다는 아닙니다.

‘견성 즉 성불’(見性卽成佛)이란 말은 위험한 표현입니다. 화두 참구를 통해 얻은 견성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한 이라도 성중 하늘에 났다가 남섬부주에 다시 와 잘못된 길에 빠져 악도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0지 보살도 붓다의 진신(眞身)을 볼 수 없습니다. 무량광(無量光)을 보고, 안으로 육종진동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없고, 무아속 삼매에 들수 없습니다. 도를 이루었다는 분들은 이러한 경지가 되지 않고는 대망어(大妄語)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라한 성자는 조그마한 열반에 만족치 않고 법화경의 부처님 가르침 뜻에 따라 보다 높은 위(位)인 보살이 되기 위해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옵니다. 

보살 8지가 되어야면 부처님은 ‘보살’이란 칭호를 부치십니다. 이 경지에 올라야 신장(2명)이 호신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여자라면 남자 몸을 받아 극락세계에 납니다. 우리나라의 원효 스님, 11세기 티베트의 전설적인 성자 밀라래빠는 극락에 왕생한 보살입니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극락세계 상품보살의 후신입니다. 

보살이 남섬부주에 여러 번 생을 받아와 붓다(붓다는 삼계의 법왕이다)를 이루는데 있어 억겁다생의 업장과 습기, 악연 그리고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녹아져서, 털끝 만큼이라도 그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불신(佛身)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할 수 없습니다.

불신은 열반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붓다는 빛으로 계십니다. 빛이시기에 삼세의 여래는 일체가 동일합니다. 한 티끌 한 생각이 같습니다. 불과를 증한 이는 거짓 몸뚱이와 네 가지 영체가 모두 빛덩이가 되어 자기 불신과 계합합니다. 

더 깊은 말씀은 여래의 밀장(密藏)이기에 함구합니다. 불신을 이룬 빛은 삼천 대천세계를 두루 비춥니다. 변조광명입니다. 비로자나 법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새벽 별을 보고 깨쳐 붓다가 되었다 합니다. 이 말은 선가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깨쳐서 확철대오 했다 해서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불신을 얻어야 비로소 붓다입니다. 오랜 기간 여러 관문을 통과해서 불신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오견성은 아라한 자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신은 백천만억 화신을 나툴 수 있습니다. 백천 삼매, 나아가 해인삼매, 대적정삼매를 자재하시고 팔만사천 신통을 구족하십니다. 지혜와 복덕, 자비 자체가 됩니다. 현신할 때의 본불신은 32상80종호 그 이상입니다. 그 모습과 일거수 일투족은 자비의 극치이시며, 한 순간 뵙기만 해도 삼재와 업장이 소멸되는 선정자체이십니다. 교종에서는 이 몸을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제가 말하는 불신은 법신과 보신을 합친 개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안팎, 마음속까지 비추는 그런 빛으로 이루어졌고, 대적정삼매에 항상 들어 계심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습니다. 붓다 이룬 이가 혹 출타할 때에는 백천의 신장님들이 앞뒤를 호위하는 광경은 장관입니다. 부처님만이 소위 법신, 보신, 화신 등 삼신을 구족하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계의 지존이자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시며, 구원실성 최초불(久遠實成最初佛)이십니다. 그후 수보리, 사리불 존자 두 분께서 처음으로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한 분의 아라한, 보살을 내는 데 있어 절대적인 공이 있는 사람은, 지옥과 축생 업을 벗고 곧 천상에 납니다. 하물며 불과를 증한 대성자가 이 땅에 출세함에 있어 큰 공을 세운 이는 극락까지 왕생할 수 있답니다. 이 대성자에게는 무한한 권능이 주어집니다.

여러분, 윤회고를 벗어나 도를 이루려면 첫째 계율, 그 중에서도‘음행’을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렇게 한다면 성불은 불가능합니다. 설사 도를 이루어 보임중인 수행자라도 음행을 무애(無碍)로 보아 저질렀다면, 마치 한 컵의 물에 똥물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만사가 무위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마장을 막아줄 수 있는 대선지식 밑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한 효를 다하고 공부 이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금강경 같은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진언과 염불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선(禪)으로 결판을 내십시오. 목숨 떼놓고 공부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 세계가 비었어라.

먼지하나 티끌하나 없는

공의 세계

맑고 깨끗한 청정자체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만현스님의‘대적정삼매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