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4일 토요일

(BBS불교방송 제2회) 무아설 ․ 영혼체 이론/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5.6.목(음3.23) 춘천 본원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5.6.목(음3.23) 춘천 본원


(BBS불교방송 제2회)




무아설 ․ 영혼체 이론


TV에 방영되기 때문에 군더더기 말은 생략합니다. 나는 지난 법회에 비아윤회설(非我輪廻說)을 주창했습니다. 그 동안의 무아설(無我說)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우리 불교는 크게 낭패를 보았습니다. 똑같이 회교도의 침입을 받아서 엄청나게 탄압을 받고, 승려들이 살육을 당하고, 전각이 방화되고 했지만, 그런데도 힌두교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불교도 힌두교와 함께 그렇게 무서운 침략을 당하고 짓밟혔지만, 우리 불교는 인도 땅에서 아쇼카왕, 칸슈카왕 등이 전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를 전 인도화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우리 불교는  힌두교에 밀리고, 흡수당하고 해서 설자리를 잃고 도망 나왔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전번에 말씀드린 대로 무아설(無我說), 무아(無我)와 윤회의 주체, 여기서 찾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는 삼법인(三法印), 혹은 사법인(四法印), 이러한 종래에 없었던(인도 철학계에 없었던) 새로운 사상을 내놨습니다. 그 중에서 특색이 무아(無我)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여기에서 이제 무아(無我)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아(無我)가 잘못 해석 되었느니라. 자재 만현이 맞느니라. 자재 만현은 법왕자로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불교가 망한 원인이 되느니라.”

2600년이 흐르도록 그 어떤 종파(교파)에서 큰스님들이(학승들이) 무아(無我)를 ‘그저 내(我)가 없다 하는 식(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육도윤회를, 그러니까 지옥 천상 아귀세계 중음세계 극락세계 그리고 불보살까지 외부현상으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의식차원에서) 이것을 해석해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고민 번민 고통스러운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그 번뇌 고민이 다 사라진 자리가 극락이다’ 하는 식으로 모두 유심화 시켰습니다.

지금까지의 불교가 그래왔습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의 확실한 견해이고 주장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현지사 영산불교 교단이 탄생 된지가 지금 3, 4년밖에 안 됩니다. 이제 BTN TV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1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 말을 못했지요.

이제 TV나 라디오가 전 국민 1,200만 명 우리 불자들에게 시청이 되고 청취가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 다음번에는 이보다도 더 중량감 있는, 정말로 중요한 불보살의 적멸세계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이 적멸의 세계도 2600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전번시간에 이어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자 불교의 몸통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불교가 살아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빠사나든, 밀교든, 선불교든 어느 나라 불교를 막론하고 불교는 사양길에 들것입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아(無我), 단순히 내가 없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생각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 생각이 아니고, 현상세계의 이 몸뚱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크나큰 요소로 인연 따라 이루어진 거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이 몸뚱이는 인연이 다하면 오온(五蘊)은 제각기 돌아갑니다.

그러면 공(空)이죠. 실체가 없지요. 현상세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이(자재 만현) 그 심의식, 그 생각(사람 마다마다 생각을 지니고 있잖아요)의 뿌리를 관해보니까 엄청난 소식이 있어요. 본체가 있어요. 

본체가 없으면 이 현상세계, 또 이 몸뚱이는 한번 생겨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성주괴공을 반복하고, 우리 사람은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본체가)있어요. 기체(基體)가 있다고요. 이걸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로 그것이 영혼체다’하고 '영혼체 이론'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누구하나라도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없지요.

학자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해석에 그칩니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지요.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2600년 동안의 불교는 육도는 맞다고 해. 

그러나 지옥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아수라, 아귀세계라든지, 중음세계라든지, 또 해탈의 저 적멸세계인 극락세계라든지, 또 보살님이라든지, 부처님이라든지 하는 이것을 객관적으로 실재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무아설(無我說)을 내가 없다고 해석을 하니까 그것도 전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 불교가 그것들을 마음차원에서(의식차원에서) 파악을 해왔다 그거예요. 이것이 문제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사상이 불교라면 인도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무아(無我), 아무것도 없다. 이게 말이 됩니까? 현상세계에서는 무아(無我)입니다. 현상세계는 실체가 없지요. 그러나 이 생각의 근원은(토대는) 있더라 그거요. 

본체가 엄연히 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왜 이것을 몰랐느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학승들이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계라는 것은 현상세계와 본체계입니다.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를 뚫고 들어가 봐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지요.

이 다음시간에 적멸의 세계를 들춰낸다고 했습니다. 눈을 떠서 적멸의 세계까지를 봐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러지를 못하고, 부처님의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해석 해버렸다고요. 잘못 해석했어. 여러분,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뭣 때문에 살아요? 나(我)가 없으면 행위 하는 주체도 없고, 생각하는 주체도 없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도 없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놈도 없어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부모가 교합할 때(수정할 때) 영혼체가 들어가야 되어요. 영혼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본체가 안 들어가면 안 되어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요.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이 핵폭탄을 능가하는 엄청난 발언인 이 선지식의 말씀을 뭉개버린다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무간지옥행입니다. 무간지옥에 가지요. 왜 그렇게 불교를 훼손합니까? 당초 그렇게 위대한 불교를 왜 그렇게 짓밟아 버립니까?

이런 현지사 영산불교의 사상을 우리 불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불자들이 들어야 됩니다. 나는 그러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불교와 인연 있는 수많은 착한 우리 단월들이 살아납니다. 악도에 가지 않습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해 가면, 이거 적당히 살아야지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면, 나(我)라는 자아(自我)가 없다면, 주체가 없다면, 죽어서 가는 것(곳)도 없고 오는 것(곳)도 없으니 뭐 적당히 살아야지요.

그런데 지금 불교가 제사(천도재)는 왜 합니까? 부처님, 보살님한테 공양은 왜 드립니까?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내가 바른말을 한다고 거부감을 가지고 도저히 방영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한번 들어봐야지요. 지난시간에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결론을 냈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

오늘은 스님이 영혼체설에 대해서 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자상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부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받아 적은 것을 여러분한테 읽어드리겠습니다.

“무아(無我)는 잘못 해석한 것이니라. 나는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지만 저세상이 없다고 아니했다. 살아있는 것, 언젠가 죽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하늘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오길 말했노라(처음 법문을 그렇게 했었어요. 

그걸 생천설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고, 죽는 것도 고통이다. 육도윤회에 돌면서 고생하는 것을 끊어주기 위해 무아(無我)를 이야기 했노라. 

(전번시간에 스님이 부연설명을 했을 거예요. 또 의미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있다 없다를 확실하게 알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더 나아가서 대적정삼매에 들어 무아(無我)의 환희는 붓다의 경계이니라. 

여기까지 공부 못하고 법을 모독 능멸하여 중생을 오도한 죄는 무간지옥에 가느니라. 붓다와 법은 영원히 멸도하지 않느니라.”

이거 녹음이 되어 있으니까 테이프를 꼭 구입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많은 말씀이 있지만 간단한 말씀을 여러분한테 소개했으니까 우리 자재 만현스님의 전번 법문에 이어서 오늘 법문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처음으로 지금 때가 되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영체설을 밝힙니다. 영혼체(영체)이론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오늘 공식으로 이 세상을 향해서, 1,200만 불자를 향해서, 세계 3억~5억의 우리 불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정리가 됩니다.



(1) 영혼체는 4개로서 다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영혼체는 밀도와 진동수가 다른 4번, 3번, 2번, 1번의 네(4)체(몸뚱이)로 겹쳐져 있다. 단, 4번에서 1번 영혼체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2) 4번 영혼체는 육체와 1․2․3번 영혼체를 접합하는 구실을 한다.



(3)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덩어리이다.



(4) 영혼체를 줄여서 영체라 부르기도 한다. 자이나교에서, 힌두교의 어느 학파에서,《아함경》에서는 식신(識身, 業身)이라고도 하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과거생 자기의 의식과 기억을 지닌 생명체이다.



(5)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립자보다도 더 작은 초미립자로 되어있다. 초미립자이기에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파동으로 보면 극히 파장이 짧은 전자파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상 다섯 가지는 힌두교에서도 이미 BC1000년 경, 그러니까 3000년 전에 그들 최고의 수행자(대성자)가 이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래와 같이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다. 붓다의 경지로 올라야 우리 영혼의 실체를 완벽히 규명하게 된다. 19세기 신지학에서 힌두교의 이 영혼의 구조까지를 이해하고, 지금 이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저것들이 모르는 영산불교의 영혼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영혼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1)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위의 주체요,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라는 영적실체가(주인공이) 있다.



(2) 영혼체란 인간의식의 근거가(토대가) 되는 이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인간모습이다.



(3) 4번 영혼체는 이 몸뚱이와 100%닮았다. 3번, 2번, 1번 영체 역시 근간은 같은 닮은 형이다. 근간이 같다. 4번 영체의 수명은 한시적(限時的)이다. 이 몸이 명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 4번 영체는 커트(cut)당합니다. 아시죠? 그 말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거의 같은 수명을 합니다. 그러나 비명(非命)에 죽게 되면 그 4번 영체로 살아가는데, 천도를 올린다든지 할 때 윤회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1․2․3번 영혼체를 명부로 넣어주잖아요. 4번 영체(영혼체)는 그로부터 2, 3년 정도 있거나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곧 소멸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그 4번 영혼체는 유령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집, 걸어 다녔던 낯익은 길, 자기의 묘지, 자기 위패가 기록된 영구위패로 모셔놓은 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 유령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 현지사 천도재에서는 그 유령을 산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안 해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해주셔야 되기 때문에 그런 수고까지는 청하지 않습니다.

(4) 인간, 동물의 태중(胎中)에 들 때에는 이제 4번 영체가 생깁니다. 1․2․3번 영혼체는 안 그럽니다. 이것은 반드시 뭉쳐 다니는데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불사(不死)입니다. 4번 영체만은 인간이나 동물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때부터 생겨서 자랍니다.



(5) 소위 12띠 동물이면 영혼체가 들어간다. 조류 어류의 일부에도 그들 영혼체가 든다. 여러분 아시죠. 곤충류 벼룩 이(louse)와 같은 해충, 거머리 등과 같은 미물들, 식물 광물, 그리고 지수화풍 공(空)에는 영혼체가 들 수 없다. 이들은 윤회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생 자연사한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는 다 들어간다고 했어요. 잘못 본 것이다.

(6) 1번 2번 3번의 영혼체는 항상 뭉쳐 다닌다. 이것이 중생들의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1번의 영체는 인간의 본체다.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아트만 정도이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지만, 여기 영산불교에서는 아니다 그럽니다. 

윤회의 주체는 1․2․3번 영체가 생겨야 됩니다. 1․2․3번 영체하고 4번 영체가 생길 수 있는 업을 지어야 그것이(그 몸뚱이가) 윤회하는 주체가 됩니다. 1번 영체를 가지고는 절대로 윤회할 수가 없습니다. 1번은 본체계입니다. 

본체계에 있는데 왜 윤회 합니까? 업이 있어야 윤회를 하지요. 그래서 업을 지어 감으로서 2번 영체가 생기고, 3번 영체가 생기고, 4번 영체가 생겨요. 이것이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윤회를 해.

(7) 1번, 2번, 3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1번 영혼체의 수명은 무시로부터 있었고, 영원토록 불사(不死)한다. 이것은 엄청난 새로운 소식입니다. 

이 영혼체는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 즉, 이것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지은 업 때문에 중생들의 영혼체 색깔은 대부분이 거무튀튀하다. 업장은 태산만하다. 마치 숯덩이와 같고, 진흙덩이와 같아서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비아(非我)라고 한다.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비아(非我)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아트만과 같이 지고지순하고 행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윤회를 못합니다. 2번 3번 4번이 붙은 비아(非我), 숯 덩어리가 된 이놈, 이 업 때문에 육도를 윤회 하는 거예요.



(8) 이 영혼체 3번으로 하늘 천국에 가서 난다(하늘 천국에 갈 때에는 3번 영혼체가 간다). 이때는 2번 영혼체와 1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쳐든다. 성중하늘은 2번으로 간다. 이때도 3번 1번은 그 안으로 겹친다. 1번 영혼체로 극락에 왕생한다. 3번 2번의 영혼체는 그 안으로 겹친다.



(9) 영혼체는 그 사람의 영격에 따라 빛(색깔)을 띄우고 있다. 오라와는 다르다. 오라(aura)는 영혼체의 색깔이 그 사람의 몸뚱이를 거쳐나온 색깔이다. 지옥 등 악도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한 색깔이다. 하늘이나 인간의 몸을 받아 올 사람은 하얀색이다. 보살은 아침 햇빛깔이고, 불과를 증한 이는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햇속 빛이다. 그러면서 안과 밖이 투명하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량억종광 빛이다.



(10) 부처님은 수행자의 다겁생의 업장을 씻어주시고, 또 그것을 소멸하실 수 있다. 그 영혼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그런 업장들을 부처님만이 씻어주시고, 소멸도 하신다 그거예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 자기 신의 애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하늘 최고신은 빛을 정수리에 쏟아 부어서 빛의 몸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기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영혼체를 꺼내어서(꺼내는 것부터는 그들은 할 수 없다. 영혼체를 끄집어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끈끈이 막으로 각 영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무량광으로 씻고 닦아 4영혼체를 분리 한 후(그들은 분리도 못한다.



세계의 어떤 종교의 교주도 이 일은 못한다), 몸뚱이까지 다섯 개의 영혼체 각 정수리 위에 부처님이나 오여래부처님이 올라가서 억종무량광으로 쏟아 붓는다. 먹물 같은 업장의 찌꺼기가 내를 이룬다. 이 정도 되면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순 타력이지요. 자력수행 갖고는 못합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작업  함으로서 아라한을 보살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부처님과 오여래, 그리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정도의 기라성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다.



또 영혼체를 감은 쇠토막 같은 업장은 아주 지중한 업을 짓게 되면 그렇게 되는데, 석가모니부처님 만이 이를 끊어 주시고, 그 끊겨진 쇠토막들은 삼매화라고 하는 불 속으로 던져 녹여버린다. 녹여 소멸시켜 주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그 영혼체의 쇠토막이 다시 붙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해주신다. 자력을 기반으로 하고, 타력 수행만이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부터는 밀장이어서 여태 말을 못했지만, 지금 현재 이 불교에서 영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까지 과감하게 말씀을 해드립니다.

(11) 업이 지중한 이의 영혼체는 부처님도 몸에서 꺼내기 조차 어렵다.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두터워 태산만 하고, 숯검정 같고, 영혼체 끼리는 껌과 같이 달라붙어 있으며, 몸뚱이와도 하나로 붙어 있어서 꺼내어 씻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금단을 영체에게 먹인다(영체 속으로 믹스시킨다). 

한의원에서 만드는 환약 같은 금단이라고 있어요. 각 부처님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약이 있습니다. 영체 속으로 그걸 흡수시킴으로서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꺼낸 다음 네(4)영체를 억종광명의 빛으로 분리하신다. 이런 과정을 거친 수행자는 지옥 등 삼악도를 면한다. 이때 빠져나가는 먹물 같은 오물은 도랑을 이룬다.



(12) 아까 말씀했지요. 보살의 법위부터는 영혼체를 꺼내어 놓으면 즐거워서 뛴다. 4영혼체를 분리해 놓으면 각각 즐거워서 환희용약한다.



(13)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영혼체는 스스로 나와서 4개의 영혼체가 독립적으로 뛰어 놀고, 공중이나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14) 아라한까지의 영혼체는 그 사람 몸뚱이의 옆으로 나오고 들어가지만, 보살 이상의 영혼체는 앞으로 나오고 앞으로 들어간다.



(15) 불과를 이룰 수행자나, 불과를 이룬 이의 영혼체는 절대계 목욕탕의 가장 위의 탕인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 저 약사궁에는 삼탕이 있는데) 일탕에서 영혼체를 분리해서 목욕을 시킨다(목욕을 한다).



(16)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잠을 잘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면 곧 몸 밖으로 영혼체가 빠져나와 오체투지 인사를 한다.



(17) 불과를 이룬 이는 열반에 들 때 1번 2번 3번 4번 영혼체는 바람같이 몸을 빠져나와 절대계의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한다.



(18) 과거생에 불과를 이룬 붓다가 사람 몸을 받아 오실 때는 자기불신 속 4영혼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든다.



(19) 불과를 이룬 붓다는 업이 없다. 악연도 모두 단절되어 있고, 원결도 없고, 갚아야할 빚도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 그 용모가 32상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자비스럽다.



(20) 어머니 뱃속에 있음을 알고, 이 세상에 나옴도 안다. 소위 생이지지한다.

이상 스무 가지입니다. 위의 다섯 가지는((1)~(5))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지만 스무 가지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 세상에 처음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두 가지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24년이니까 약85년전입니다.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재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주시 옥봉동이라는 동이 있는가 봐요. 그 김재이라는 노인은 80살을 먹었어요. 또한 진주시 비봉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김재이라는 이름을 가진 38살 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라는 사람이 저녁에 잠을 잡니다. 꿈이라고 봐도 되지만 꿈이 아닙니다.



형사 같은 이가 와서 ‘좀 가야할 일이 있으니까 나를 따라 가자’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형사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만큼 갔는데, 어느 큰 관공서(경찰서)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거예요.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어 넣는데 보니까 이미 20여명이 와있더라 그거요. 그런데 한참 있으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나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비봉동에 사는 38살 먹은 김재이를 내보내라 그거예요. 왜 옥봉동80노인  김재이를 안 잡아 왔냐 그거라.



그래서 비봉동 38살 김재이가 석방되어 자기의 집으로 왔다 그거예요. 와서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예요. 그래서 아침 일찍 종을 시켜서 옥봉동 80노인 김재이씨 집을 가보라고 했어요. 가봤더니 거기에 초상이 났어. 그래서 ‘김재이라는 노인이 몇 시경에 운명하셨오’ 라고 물으니까 ‘새벽 3시쯤 됩니다’ 라고 하더래.



따라가고, 잡혀가고, 또 오고 한 놈이 뭐죠? 영혼체입니다. 4번 영혼체. 4번 영혼체 속에 3번 2번 1번이 겹쳐있습니다. 4번 영혼체는 우리 사람과 털구멍 하나 틀림없이 100% 닮았다고 했지요. 1․2․3번 영혼체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은 1․2․3․4번 영혼체가 닮았습니다. 그런데 올라 갈수록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근간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천도되어 가지고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는 척 보면 알아요. 지옥에 있었는데도 알아. 그런데 천도를 몇 번 하니까 하늘에 올라가셨어요. 우리의 경우입니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그냥 알아. 또 우리 어머니가 성중하늘을 가고 극락세계에 이제 가셨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빛이 나고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아는 거예요.



그걸 근간이라고 하는데,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근간을 가지고 그냥 알아봐지더라. 그런데 대승불교쪽인 유식학, 부파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하고 윤회의 주체 간에 모순이 없도록 이론을 창출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푸드갈라 이론이 나오고, 무슨 근본 식이 나오고... 많이 나오잖아요. 대승불교 쪽으로 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까 스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가령, 지옥이라든지, 윤회의 세계(육도의 세계)라든지, 또 적멸의 세계(해탈의 세계)라든지, 불보살님이라든지, 심지어 선불교에서는 삼보라든지 붓다의 삼신설이라든지 하는 그 전부를 마음차원에서 해석해버려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가 믿겠어요. 이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쫓겨나왔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영산불교에서 공식적(대내외적)으로 내가 '아난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말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저 적멸의 세계라든지, 대적정삼매에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 신도 중에서 어떤 남편 이야기예요. 성명은 생략합니다. 어떤 모 사장이 50대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부인 되는 분이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책자를 통해서 알고, 우리 신도가 된 지가 2, 3년 됩니다. 49재를 의뢰해왔어요. 그 부인되시는 신도분이(보살님이) 대단히 착하고 진실하고 전생에 선근이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써서 천도재에 임했습니다.



그 남편의 49재는 그분이 살았을 당시에 다녔던 절에서 했으니까 아마 49재가 지나갔을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 새로이 천도재를 하면서 보니까 무주고혼으로 있어요. 명부를 못 들어갔어요.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불교가 전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돌았다든지, 묘한 말을 한다든지 해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거예요.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무주고혼이 된 그 남편을 붙들어 왔지요. 붙들어 오는 것도 정말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죠?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수성가를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처자가 있지, 돈이 있지 하니까 죽어서 무주고혼이 되는 거예요.



무주고혼이 되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어쨌든 무주고혼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잡아다 놓고 ‘당신, 명부를 들어가라. 명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업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면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 그러니 말을 들어라’ 하니까 말을 잘 안 들어. 이 몸뚱이가 그대로 가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 전혀 모릅니다. 모르는 거예요. ‘당신은 죽었다. 자, 봐라.’ 그래가지고 큰스님의 영혼체가 큰스님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가지고 보여줍니다.



그 영혼체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눈이 부셔서 상하니까 빛을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면 빛이 아롱아롱해요. 보여주면서 이것이(영혼체가) 바로 내 몸속에서 나왔잖느냐. 당신도 그래. 지금 당신도 그랬어. 죽었는데 지금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나 들어간다 하고 쏙 들어가거든. 또 나가고 하니까 이제 알아.



그제야 ‘아! 그렇습니까’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큰스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은 업이 지중하니까 저 불바다 지옥으로 간다’고 하니까, ‘아! 그러냐’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들어가거라. 들어가고, 저 사랑하는 처자를 위해서 네가 몰래 감춰두었던 돈, 모든 통장(사후에 형제들 끼리 재산다툼도 있잖아요. 그걸 막아주기 위해서입니다)등 모든 것을 갖다 줘라.



그러니까 그 사장이 모든 통장이며 도장, 자기의 통장이며 도장 등 모든 것을 갖다가 자기 부인한테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한 몇 십일 동안 부인 몸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기를 빼라. 그것을 빼야 됩니다. 그래야 환영(幻影)이 없어집니다. 주~욱 빼가지고 한 짐 짊어지고 명부로 갔어요.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착하고, 신심이 있고, 선근이 있어서 그 남편의 천도재를 몇 번 해서 지금 제3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신도분들,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우리 불자님들, 영혼체라는 것이 우리 인간 중생의 윤회 주체입니다.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깊이 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하고, 바르게 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지어야 현상세계에서 본체계로 들어갑니다.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혼자 공부해가지고는(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어려운 거예요. 자력의 한계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 자리인데, 아라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만, 부처님의 가피로(위신력으로)해서 저 본체세계(적멸의 세계)로 갑니다. 보살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무한하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제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계시더라. 지금 그 많은 붓다님들을 전부 없다고 하네. 상징으로 봐버려요. 비유로 봐버려.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런 불교가 어떻게 크겠습니까. 진리 아닌 것은 죽는 거예요. 진리는 반드시 살아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 3, 4년 밖에 안 되었지만 사방에서 엄청나게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게 TV석상이라서 자세히 말을 못하는데, 외압이라고 할까 시기 질투가 너무도 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해왔잖아요. 앞으로 정말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 말씀이, 정말로 진짜 부처님 사상이 널리 포교 되어야 합니다. 널리 포교 되어야 됩니다.



우리 현지사 착한 우리 단월님들, 3년 5년 다녔잖아요. 그래서 업장을 많이도 씻었잖아요. 업장을 씻는 그 부분을 전혀 모릅니다. 저쪽에서는 부처님도 없다고 하는데, 무슨 업장을 씻는다고 해? 전혀 모릅니다. 이 방송,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의아해 하고, 어떤 선근이 없으면 욕하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그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 업은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법을 능멸하고, 붓다를 모독하는 것은 무서운 업이랍니다.



무아(無我), 범어로는 아트만(atman) 앞에다가 an을 더 붙여줍니다. anatman그럽니다. 무아(無我, anatman), 현상계의 무상한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어. 그런데 왜 무아(無我)를 갖다가 단순하게 ‘내가 없다’라고 해석 해가지고 불교를 그 인도 땅에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었느냐구요. 이 위대한 불교가(종교가) 이미 세계화 되어 있어야지요. 세계화 되었어야지. 그러나 이런 법문을 듣고, 깊이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다면, 우주적인 종교인 진짜 불교가 원상대로 복원 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위대한 부처님도 반열반에 드시면 공(空)과 계합한다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오겠습니까? 올 수가 없지요. 공(空)과 하나로 되어버렸어. 인격적인 자아가 소멸되어 버린 거예요. 소멸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 다시 못 오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요. 큰일 날 해석이지요.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본체세계(적멸세계)는 상락아정입니다.



상락아정이라고 해요. 거기는 무상(無常)하지 않아요. 상(常)이어요. 현상계인 여기는 실체가 없고,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해서 흩어지면 실체가 없지요. 그건 현상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말이어요. 그건 맞아. 그러나 적멸세계까지 들어가 봐. 거기는 아(我)입니다. 유아(有我)예요. 거룩한 보살님들이 계셔요. 부처님들은 정말로 절대계에 계시고요. 또 현상세계 윤회 안의 지옥도 영혼체가 가는 것이니까 가서 벌 받고, 또 하늘은 3번 영혼체가 간다고 했지요.



 3번 영혼체가 하늘 천인으로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대승불교에서의 유가행파인 법상종) 제8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식(識)은 절대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무슨 비유를 했느냐 하면, 식(識)이 극락을 간다? 식(識)은 느낌도 없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고 그럽니다. 그 모양도 없는 식(識)이 떨어져 나가가지고 극락을 가서 산다? 식(識)이 행위 한다? 행위 하지도 못해. 식(識)은 과보를 받지도 않아. 다만 이 근(根)이 있어야 돼.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가 있고, 경계가 있어야 식(識)이 생기는 거예요. 식(識)이 활동을 하는 거요.



그런데 이 몸뚱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영혼체(영혼을 담은 그릇, 영혼을 담은 몸뚱이)가 벌을 받고 또 극락에 가서 ‘햐! 여기는 정말로 환희로구나’한단 말이에요. 붓다가 되면 아까 무아속 환희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힌두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브라만은(梵은) 100^7(100의 7승)의 환희 속에 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쾌락의 100배에다가 지수 7승을 해줘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참 우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럽니다. 범(梵)은 붓다가 아닙니다. 자기들의 말로 하자면 범(梵)은 이 현상계를 낸 소위 창조주이지요. 창조주는 없습니다. 힌두교 식으로 말하면 현상계를 낸 창조주입니다. 이 범(梵)은 공(空)입니다. 공(空)을 인격화 시킨 것이 범(梵)이어요. 범(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 행복, 최고 쾌락의 100^7이다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무아속 절대세계에 들어가는 대적정삼매의 환희가 그 정도입니다.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 했지요.



다시 여러분들한테 바른 정의를 말씀드립니다. 현상계의 존재인 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해. 그렇지요.  무아(無我)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我)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현상계의 나(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무아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지, 나(我)라는 것은 완전히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현상계의 시각에서 보지말라 그거예요. 현상계의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지 마라 그거요. 적멸세계와 본체계와 현상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불보살을 어떻게 해석 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아십니까?《화엄경》《법화경》이 진짜 법문인데 상징, 비유로 해석합니다. 

부처님 반열반 후에 두 세 사람의 학승을 꼽으라면 용수, 무착, 세친 같은 분들을 꼽을 거예요. 무착 같은 분이 윤회의 주체를 알려고  하면서 무아(無我)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되겠거든요. 

그런데 없다고 하니까 이거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했답니다.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의 권유로 계속 공부를 해가지고 삼매에 들어 도솔천에 가서 미륵부처님한테 유식의 이론을 공부해가지고 왔어요.

이분을 유식학의 조(祖,鼻祖)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8아뢰야식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몰랐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불교는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크게 공부해서 대선지식이라는 분이 출세했다고 하면 법상에 올려놔야지요. 왜 내려 버리려고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지요. 들어봐야지요. 정말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앞으로 모두모두 삼악도를 벗어나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을 가야 됩니다. 최소한 하늘, 그리고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아시죠. 그런데 종래의 불교는 안 그럽니다. 

붓다도 없고, 보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어요. 영혼이 없다고 딱 성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화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 윤리를 주장할(선창할) 기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윤리 도덕이 가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안 되지요.



다음 시간은 본체, 적멸의 세계를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밝힐 겁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불교는 정말로 위대한 우주적인 종교로 거듭납니다. 우리 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시고, 삼계의 대도사임이 분명합니다. 지금 그것을 모릅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없다고 하는데요. 또 공(空)과 계합 해버렸다는데요. 공(空)과 계합해버리면, 그 인격적인 그분이 공(空)과 계합해버렸으니까(흡수당해 버렸으니까) 이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어. 정말로 한탄할 현재의 불교입니다. 

여러분, 꼭 영산불교를 사랑해주시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을 항상 놓치지 마시고(염불 하시고), 우리 교단에서 권하는 공부 잘하시고, 선근공덕 쌓으십시오. 

여러분들은 대부분 하늘에 간다고 그랬어요. 3년 정도 씻겨주고 씻겨주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부자 된다고 했어요. 여러분, 앞으로 부자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유념하십시오. 사랑해주세요. 스님 따라서,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



(BBS불교방송 제1회)/ 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 4. 7. 수(음2.23) 대전 분원

 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2010. 4. 7. 수(음2.23) 대전 분원


(BBS불교방송 제1회)


4, 5년 전 불교TV BTN방송에서 6개월 정도 설법을 했던 자재만현입니다. 몇 년이 흘러 이제 BBS 불교TV방송에 나와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BBS불교 라디오방송과 BBS 불교TV방송을 시청해 주시는 이 나라 1200만의 우리 사랑스러운 불자님들, 그리고 오늘 일본에서도 7명이 왔습니다. 현지사 신도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부처님의 진정한 말씀, 위대한 불교를 여러분들한테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 세계인구는 70억 가까이 됩니다. 많은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수만(數萬)을 헤아리는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그리해서 많은 종교인구가 됩니다. 미국만 해도 5,000여개의 사교집단(邪敎集團)을 위시해서, 개신교만 해도 2만5천여 개의 종파가(교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만을 헤아리는 교단(종파)이 있습니다. 종교집단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도들이 약10억을 넘을 겁니다. 힌두교가 또 그렇습니다. 이슬람교가 또 그 정도 됩니다. 

그런데 너무도 희유하시고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는 아마 2, 3억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사실 불교는 역사가 2600년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성불하신지가 2600년 전이 아닙니다. 아주 옛적에, 무량겁 전에, 진묵겁 전에 이미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그 동안 사바세계에 많이도 다녀가셨습니다. 

불교는 가장 우수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불교는 대단히 슬프게도 원형불교(본래의 불교)에서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너무 왜소화(矮小化) 되어있고, 너무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이 법문을 수락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불과(佛果)를 이루신 2600년 전만 하더라도 종이도 없었고, 볼펜도 없었고, 녹음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 귀중한 말씀을 담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외워서 ‘아! 그것이 옳다’하게 되면 합송으로 내려갑니다. 모두 함께 외워요.

그렇게 하기를 부처님 열반 후 100년, 200년, 그때부터 이제 경전이 편집되어 갑니다. 여기서 많이 왜곡 됩니다. 인도라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방언은 1,600여 가지가 넘습니다. 

중국도 심하지만 인도의 방언이 아주 심합니다. 그런데다가 불멸후(부처님 가신 후) 100년쯤 되어서 부처님의 교단이 상좌부(上座部), 대중부(大衆部)등으로 분열됩니다.

그로부터 100년간에 20여개 부파로 분열됩니다. 그래서 불교의 사상은 왜곡되어 갑니다. 그 구어체인 부처님 말씀을 문자로 정착하다가 보니까(문어체로 쓰다가 보니까) 왜곡 되고,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불교는 발전해 가는데, 여러분이 아셔야 될 것은 부처님 가신지 200년 쯤 되어서 마우리아(Maurya)왕조의 3대왕인 '아쇼카왕(아육왕(阿育王))'이 출세했습니다.

그분은 최초로 전 인도를 통일한 대단한 불자였습니다. 아쇼카왕은 인도 자체는 물론, 지금의 이라크 이란 쪽의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그리스까지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그 이쇼카왕은 이제 보니까 어떤 붓다의 후신이었습니다. 

부처님 이후 붓다의 후신이 열분 정도 오셨습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의 덕분으로 그 당시 면면히 내려오던 브라만교(브라마니즘, 나중에 힌두교로 개칭함)를 누르고 불교가 전 인도를 석권했습니다.

그러나 개탄스럽게도 부처님 가신지 1500년~1600년 후, 아쇼카왕이 가신지 1400년 쯤 되어서 불교는 인도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힌두이즘(힌두교)에 흡수되는 등, 어쨌든 간에 불교는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주목했습니다. 이 좋은 교리, 부처님 사상인 불교가 왜 망했느냐?

대학교에 가서 인도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불교가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11세기에 회교군의 침입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도 정신적․사상적으로 힌두교에 눌려버렸습니다. 

다시 부흥한 힌두교(브라만교)에 눌려버렸습니다. 그 인도사람들은 종교심이 대단히 강합니다. 브라만교는 범(梵)·아트만(atman)종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말씀을 해드려야 됩니다.

브라만교(힌두교)란 뭐냐? 이걸 이해하려면 간단하게 말씀을 드려야 됩니다. 태초(太初)에 우주에 변재(遍在)해 있는(우주에 충만해 있는, 꽉 들어차 있는)어떤 절대자, 이게 범(梵)입니다. 범(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아무것도 없는 태초입니다. 

그 범(梵)이 스스로 자기를 전개시켜가지고 사람을 비롯해서 우주만물을 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그 범(梵)은 우주만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참 이상하고, 재미있지요?

이것이 만물을 냈으니까 질료인(質料因)이라고 합니다. 질료, 질료인(質料因), 원인이 되어요.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그것들이 모든 활동을 하여 업을 짓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냈으니까 그것을 동력인(動力因)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 개개인은 범(梵)이 들어갔으니까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범(梵), 아트만이라고 하는 개념을 알아야 됩니다.

이건 인도의 힌두교(브라만교)입니다. 이 브라만교에서 불교를 볼 때, 불교는 이러한 종교입니다. 인연소생 인연생기(因緣所生 因緣生起)를 이야기합니다. 인연소생(因緣所生), 인연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모든 역사는(모든 사건은) 인연으로 일어나 생긴다는 거예요. 이걸 연기법(緣起法), 또는 연기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최초로 발견한 정말로 위대한 사상입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벌써 많은 주장이 있었습니다. 범(梵)이 스스로 자기의 몸을 전개해서 만물을 냈다고 하는 것을 '전변설(轉變說)'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전변설(轉變說)'은 큰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전변설(轉變說)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우주에 충만해 있는 힘, 태초부터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면서 우주에 두루 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이것을 우리가 범(梵)이라 하고, 공(空)이라 하고, 일심진여, 진여불성(眞如佛性), 마음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잖습니까? 

브라만교에서는 이것에다가 인격을 부여해줍니다. 거기서도(브라만교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격을 부여해줘. 그래서 범(梵)이 스스로 전개해서(활동을 해서, 몸을 뒤틀어서) 우주만물을 냈다 그거예요. 이걸 행위로 봅니다. 

그것은 인격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나, 우리 불교에서는 그건 아닙니다. 이 자존자는(空은, 佛性은, 마음은) 어디까지나 비인격(非人格)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비인격입니다. 이것은 견성(見性)해보면 압니다. 우주본체를 보는 그 자리를 견성이라고 합니다. 

본래의 마음, 우주의 근원적인 본체를 보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해 본 사람(견성한 사람)은 압니다.

뒤집혀가지고, 경계가 뒤집히더니 하나도 없어. 텅 비어있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텅 비어 있단 말이어요. 실체가 없더라 그거요. 가고 오고하는 것이 없어. 

머물고 하는 것도 없어. 이것이 본체야. 이게 본체인데, 여기에다가 심하게 인격을 붙여가지고 인격신으로 화한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올 시다. 어쨌든 이건 인격이 아닙니다. 이건 비 인격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에다가 인격을 부여한 소위, 신(神)을 부정합니다. 자이나교도 그렇지만 불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신(神)을, 인격신(人格神)을 부정합니다. 비인격(非人格)의 원리는 긍정합니다. 비인격적인 원리, 이것은 긍정합니다. 이게 불교입니다.

비인격의 그 범(梵)에서(자존자에서, 空에서) 현상세계가 어떻게 벌어져 나왔느냐?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인연 따라서 모든 것은 생기고, 인연 따라서 일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연의 법칙, 인과의 법칙, 연기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여기에 성냥이 있습니다. 성냥을 그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이 일어나지요.

이거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그 일어난 불은 하나님이 만들었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불이 생겼습니까? 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성냥이라는 것 하고, 사람이라는 것하고의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 거예요. 그러면 뭐가 문제냐? 이 공(空), 진여불성, 법성, 법신, 범(梵), 범(梵)이라고 합시다.

이건(이 곳에는) 모든 사물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성품이 녹아 있는데 예요. 불이라고 하는 성품이 상주생 상주멸(常住生 常住滅)이라고 합니다. 상주생 상주멸(常住生 常住滅), 불이라고 하는 성품이 이 우주 안에 가득히 있어요. 불(火)만 그러느냐? 

물, 땅, 허공, 바람이라는 성품(지·수·화·풍의 성품)도 그래요. 이 우주 안에 충만해 있다 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냥개비를 가지고 그으면 불이 나온다 그거예요. 이 본체(우주만물)에, 우주 간에 이런 성품이 없으면(있지 않으면) 아무리 그어대도 불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알겠지요? 간단한 예를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은 불과(佛果)를 이루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이것을 알 수가 없어요. 이 세상만물이 어떻게 생겼느냐? 다른 종교의 철학,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그걸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이것은 인간의 한계예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을(절대자를) 딱 설정해 놓고 보니까 다 되어. 전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창조해버렸어. 엿새 동안에 다 만들어 버렸어. 이렇게 해버리니까 해석이 쉬워. 

그렇지만 수십, 수 백 천 가지의 많은 모순이 옵니다. 모순이 있어요. 그러나 연기법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연기법(연기의 법칙)입니다. 창조론(創造論)이나 전변론(轉變論)이 아닙니다. 일단 그것을 아십시오.

불교가 망한 이유를 지금 이야기하기 전에, 이렇게 조금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해드리는 거예요. 불교가 왜곡되지 않았더라면, 아쇼카왕이 저 너른 인도 땅을 전부 통일하고 페르시아까지 포교를 했잖습니까? 

그 후에 우리 불교가 발전을 거듭했다면, 당나라 때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은 자연히 접수했잖아요(먹었잖아요). 서구라파, 미국까지도 가지 못했다는(갈 수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어요.

전 세계를 먹을 수 있었어요(접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망했느냐? 재래불교에는 결정적인 흠결이 있습니다. 여러분, 듣고 싶죠? 불교를 사랑하는 여러분, 듣고 싶죠? 불교는 인연소생 인연생기, 연기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육도윤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요? 여섯 세계를 업을 따라서, 지은 업에 의해서 여섯 세계를 가서 죽고, 여기서 나고 여기서 가고 죽고해서 여섯 세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윤회,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하는 그 비유가 맞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어떤 사람은 죽어서 하늘 간 분도 있고,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옥 가는 분도 있고, 그러더니 사람으로 오고, 축생으로 오고, 사람마다 각각이기 때문에 윤회생사라는 말이 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중생은 육도에 윤회전생(輪廻轉生)합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육도에 윤회전생(輪廻轉生)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중심사상입니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이 그렇습니다. 육도윤회를 전생합니다. 이건 맞습니다.

그러면 육도를 윤회하는데, 불교에서는 무아설(無我說)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따라해 보세요. ‘무아설(無我說).’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불교의 특색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삼법인(三法印)사상을 공부할 때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공부했을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문제가 옵니다. 모든 사물을 봅시다.

이 세상 우주만물을 한번 봅시다. 여기에 놓여있는 컵, 책상, 마이크, 저기 보이는 산, 바위, 돌, 자갈, 땅, 별...등 이 모든 것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거예요. 그건 맞는 거예요. 인연 따라서 이루어졌어요.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요소가 모여진 것은 우리 눈에 보여서 이제 있다고 하고, 이 인연이 다해서 흩어져버리면 없다고 합니다. 공(空)이 되어버려. 전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요. 왜 그러느냐?



인연소생(因緣所生)이기 때문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요. 완전히 흩어져버리면 아무것도 없어. 실체가 없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실체가 없어요. 자아(自我)라는 것이 없어요. 우리 육신도 봅시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을 봅시다. 이것도 나(我)가 아닙니다. 이것도 나(我)라고 하는 실체가 없어요. 눈(眼)이 실체가 있으면 영원히(백천만겁을) 놓아두어도 눈(眼)으로 있어야 돼. 그런데 이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연으로 모여졌기 때문에, 이것은 금방 없어져버려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의 이 컵도 흙하고, 물하고, 불이 모여서 된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이 몸뚱이를 봐요. 이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어.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실체가 없어요. 죽어버리면 허망합니다. 다비(茶毘)해버리면 한줌의 흙(재)으로 되어버려. 허망해. 그런데 사람을 비롯해서 유정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색(色)이 있습니다. 지수화풍, 이것을 색(色)이라고 해요. 색깔, 또는 색(色) · 색대 · 색의 원소(요소)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를 묶어서 색(色)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정신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사람은 정신적인 것이 있잖아요. 그것을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합니다.



수(受)-받아들이고, 상(想)-받아들인 것을 생각하고, 행(行)-그것을 갖다가 정신적으로 행위하고, 식(識)-인식해(판단해). 정신(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하는 요소가 있어요(요소로 이루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五蘊)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색(色)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한다고 했지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온(蘊)이라고 하는 것은 '쌓임'이라는 뜻이어요. 쌓임, 과학에서 볼 때 산소라고 하는 원소는 산소원자의 집합이어요. 그렇잖습니까? 무수하고 동일한 산소원자의 집합이 산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쌓인 거예요.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 그래요. 

그래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래. 사람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정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정신, 이것이 문제야.

유물론자들은, 저 세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뇌의 산물로 봅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불교에서는 정신을 뇌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뇌를(육신을) 조종하는 주인으로 봐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 무아(無我)를 설명하는데, 여러분! 좀 지루할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잘 들으세요. 인간은 오온으로 이루어져있어요. 그런데 그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문제더라 그거요. 이것을 실체로 볼 것인가, 이것을 실체 아닌 것으로 볼 것인가? 

그런데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니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한다고 하면 주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윤회하는 주체가 없이는 육도윤회를 할 수가 없어.

그런데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이거든요. 부파 불교에서 어떻게 이 생각을 실체로 안 봐요. 그러니까 부처님 멸후 100년 이후 20여개의 교파가 나누어져 버렸는데, 이 각 부파 불교에서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해야 되고, 육도윤회에 충실해야 되고, 그러니까 무아설 ·

 육도윤회 주체설이라는 두 가지에 모순되지 않도록 현학적 · 학문적으로 깊이 학승들이 연구를 한 거예요. 연구를 했어요. 그래서 이 생각(정신)도 인연이 다해버리면 공(空)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空)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실체가 있어야 되겠다. 실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의 주체를 이야기한다고 하면 이거 안 돼. 힌두교에서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힌두교의 여러 베다 학파의 학승들이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집요하게 공격을 했어. 그거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윤회를 하는데, 윤회를 하면 주체가 있어야 되는데, 이 몸에 주체가 없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그래서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해야 되겠고, 윤회를 한다고 하는 윤회의 주체도 맞아야 되겠고, 그러니까 이것을 각 부파에서 연구해내기를(생각해내기를) 거듭했습니다. 어떤 부파에서는, 아마 '경량부(輕量部: Sautrantika)'일 것입니다. 

소승불교 20부파 가운데 하나인 '경량부(輕量部: Sautrantika)'는 후세에까지 대단히 힘을 썼던(힘이 있는) 부파 불교인데, 거기서는 마음(생각)이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한다고 했습니다.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 앞생각이 없어지면 뒷생각, 앞생각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뒷생각에다가 줘. 이렇게 이렇게 찰나생(刹那生)찰나멸(刹那滅)하는 심의 상속이론, 심-마음이 흐른다. 생각이 흐른다.

이것이 윤회의 주체다. 생각이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하지만, 이것이 물 흐르듯이 흘러. 촛불처럼 흘러. 초저녁 촛불, 한밤중 촛불, 새벽 촛불이 같듯이 흐름, 식(識)의 흐름, 이것이 윤회의 주체다 하고 나온 데도 있습니다. 여러분한테 소개해드리는 것은 재미있는 학설이 그렇다 그거요.

'포두갈라(podugla)', 한문으로는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하는 윤회의 주체가 있는데, 그것은 이 몸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몸을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주체가 있다 그거예요.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하는 주체가 있다. 

그래서 육도를 윤회한다 해가지고 '보특가라(補特伽羅)' 이론을 내놓습니다. 나중에 대승불교가 흥기해가지고 BC 1세기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용수 · 마명'이라는 걸출한 학승이 나옵니다. 거기는 공(空)·공(空)·공(空)했는데, 그걸 힌두교에서 볼 때에는 허무주의라고 그래요. 나중에 '무착 ․ 세친'이 나와 가지고 ‘아니다.

모든 우주 산물은 이 마음이 변형된 것이다. 식(識)이 변형된 것이다.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다’ 고 합니다. 힌두교에서 볼 때에는 이것은 대단히 관념론이어요. 

이것은 사변론이어. 대단히 공허한 사변론이라고해. 힌두교 쪽에서는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무아(無我)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 속 시원하게 대답을 못한단 말이에요. 앞의 '무착·세친'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내놓고 있어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면 모든 식(識)을 저장하고, 모든 식(識)의 정보를 저장하고, 신·구·의 삼업(업)의 종자를 저장하고 하는 식(識)을 말하는데, 그런 식(識)이 있다고 하여 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내놓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무아설(無我說)에 충실하려고 하니까 ‘상주도 아니고 단멸도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어쨌든 간에 힌두교(브라만교)의 그 많은 학파의 학승들에 의해서 질타를 당합니다.

불교가 집요하게 질타당합니다. 그러면 인도국민이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라는 것을 다 듣는단 말이에요. 다 듣습니다. 인도국민은 전통적으로 범(梵)·아트만 사상으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상에서 볼 때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은 인도국민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 모든 물상(물체)들은 인연이 모이면 생기고,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하는 그것은 이해가 돼. 그런데 ‘오온으로 이루어진 사람까지도 인연이 되면 다 흩어져버린다’고 해버리면, ‘내(我)가 없다’해버리면,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심각하게 들어보세요. 

‘나(我)가 없다. 당신도 없어.’ 그렇다면 그게 말이 되느냐 그거예요. 말이 됩니까? 상식으로 볼 때 이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돼.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두 번째로 불교가 크게 궁지로 몰린, 불교의 교설이 크게 밀린 그 두 번째 문제도 있습니다.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리해서 불교는 인도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납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원리(이유, 원인)입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경전을 한 번 들여다보자 그거예요. 경전을 들여다보면 인연소생(因緣所生)이 맞아요. 말이 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인연생기(因緣生起)도 맞아요. 그런데 유정, 사람에 와서는 이렇게 말해요. 눈은(눈도) 나(我)가 아니다. 

입․귀․코도 나(我)가 아니다. 이 몸뚱이도 나(我)가 아니다로 나가요. 비아(非我)로 말해요. 이제 비아(非我)로 나갑니다. 비아(非我)를 말씀하셨어요. 곳곳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비아(非我)란 것은 뭐냐? 내(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내(我)가 아니다’하면, ‘내(我)가 있다’하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내(我)가 아니다 하는 것은 내(我)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예요. 이제 현지사 불교사상이 나옵니다. 

이 몸도 내(我)가 아니다. 이 생각, 앞에서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했는데 약(略)해가지고 '생각'이라고 합시다. 정신, 생각. 이 생각이 내(我)가 아니어요. 왜 그러느냐? 이 생각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안 그렇습니까? 일어났다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합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 생각은 사실 진짜 내(我)가 아닌 거예요. 이 몸뚱이도 진짜 나(我)가 아닌 거예요. 

이 몸뚱이는 100년 있으면 허물어져서 다 사대로 흩어져요. 한 줌의 흙으로 되거나 재로 됩니다. 안 그럽니까? 진짜 나(我)라고 하면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야 진짜인 거예요.

나(我)라고 하면, 내 몸뚱이라고 하면, 내 것이라고 하면 나(我)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돼. 병도 안 걸려야 되겠다고 하면 안 걸려야 돼. 그런데 이 몸뚱이가 병에 걸리잖아요. 나는 오래 살고 싶다 하면 오래 살아야 돼. 그런데 어느 날 밖에 나가서 교통사고를 당해가지고 갑자기 죽어버려.

이 몸뚱이는 진짜 나(我)가 아니어. 이 몸뚱이는 가짜 나(我)예요. 이것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 생각도 그래요. 여러분, 이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애들에게 ‘너 그런 짓하면 안 돼’라고 하면, 애들은 자꾸 안 된다고 하는 쪽으로 갑니다. 

이 생각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나(我)가 아니어. 그건 맞아요. 그러니까 어디를 봐도, 사람의 어디를 봐도 나(我)가 아니어요. 나(我)가 없어.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나(我)가 없어.

그런데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공(空)에서는 무아(無我)다 그럽니다. 공(空)에서는 무아(無我)다 그러는데, 이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쓴 까닭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의 핵심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이건 꼭 알아두셔야 됩니다.

고통의 제거에 초점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우리 사람들, 유정들의 고통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거의 무시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외도가 와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면 묵묵부답으로 나가십니다.

 묵묵부답을 '무기(無記)'라고도 해. '무기(無記)'로 대답한단 말이에요. 요즘에 나도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대학생 등)이 찾아와서 ‘스님! 이 세계는 언제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된 것입니까. 이 세계는 언제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혹은 사람은 어찌해서 생겨났고, 남녀의 성별이 왜 거의 절반 절반을 이룹니까?’ 이런 식으로 묻는다고요. 이런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해요.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대답을 안 하셔요.

 '무기(無記)'로 응해버립니다. '무기(無記)'로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걸 십사무기라고 해요. 오직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고(苦)의 문제 해결에 있습니다. 고(苦, 고통)의 문제해결에 있어요.

고(苦),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는 그 설움, 고통이지요. 둘째, 온갖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도 큰 고통이지요. 요즘은 현대의학으로 나을 수 없는 중한 병들이 많이 옵니다. 셋째, 비명횡사(非命橫死)입니다. 이런 죽음은 고(苦)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고통의 제거에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고, 당신의 법문을 듣는 사람에게도 저 사람의 고통을 내가 제거해줘야 되겠다. 이것밖에 관심이 없어요. 1차적인 관심은 그것 밖에 없어.

그래서 보면, 세상 사람들 거의 많은 수가 죽으면 지옥으로 간다 그거예요. 지옥을 가거나 짐승이 됩니다. 하늘을 가거나 사람으로 오는 경우는 100에 한 둘입니다. 

이거 슬픈 일이어요. 지옥의 고통, 지옥의 수 등은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아주 많습니다. 낱낱의 지옥은 사바세계만큼 넓어. 그 각각의 지옥에 많은 중생들이 들어차 있어요.

어떤 지옥은 그 받는 형벌이 상상할 수 없어. 이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짐승으로 와서 살 때의 고통은 얼마나 큽니까? 짐승이 죽을 때 어떻게 죽습니까? 

칼로 목을 따거나, 혹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하고,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기도 하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기도 하지요. 이거 비참합니다. 

짐승으로 한 생을 사는 것도 비참한데 죽을 때도 비참해. 나나 여러분은 절대로 지옥을 가서는 안 되고, 짐승이 되어서도 안 되고, 아귀세계에 가도 안 돼. 이걸 막아줘야 돼. 부처님의 관심사는 고통의 제거, 중생의 고통 제거에 있어요. 얼마나 자비하십니까?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중생들은 집착이 강합니다. 집착이 아주 강해.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재물에 대한 집착, 권력․명예에 대한 집착, 이성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합니다.

 이 집착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실 때 업을 짓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 집착을 떼어줘야 됩니다. 집착이 고(苦, 고통)를 낳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만 떼어 줘버리면,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만 놔버리면, 나머지 집착은 자연히 떨어집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 명예․권력에 대한 집착, 성에 대한 집착 등등, 이것은 지말적인 것이어요. 이 몸에 대한 집착만 떼어주면 돼. 

그래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이것은 방편이어. 집착을 떼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무아(無我)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세계의 모든 개개물이 인연으로 되어있고, 인연 따라 흩어져서 없어집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맞는데, 인연소생 인연생기는 어디까지나 현상세계에 국한한 이야기 올 시다. 현상세계에 국한한 이야기예요. 이것을 저기 묘유(妙有) ․ 적멸(寂滅) ․ 본체의 세계까지 끌고 가면 안 돼. 그래서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앞으로 스님이 매회 50분 씩 한 달에 두 번, 6개월 동안 하기 때문에 주~욱 해갈 것입니다. 이 위대한 불교가 세력을 잃고, 억울하게도 인도 땅에서 쫓겨나 설 수 없는, 그리해서 인도 땅을 버리고 나온 이유, 지금의 불교는 원래의 불교에 비해서 대단히 왜소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왜소화 되었어. 

그 교리가 너무 왜곡 되었어. 그래서 스님이 감히 이 자리에 서서 6개월 동안 위대한 불교의 면목을 여러분한테 알려 드릴 겁니다.

▸이 무아설(無我說)과 윤회주체 간의 상관관계를 말씀드리고,

▸그 다음, 어떠한 종교도, 모든 종교의 종교라고 하는 힌두교도 알지 못하는 소식입니다. 그건 뭐냐? 힌두교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 끝납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치면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친 것으로 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깨쳤으면 보림을 해야 돼. 우리 선불교(禪佛敎)에서 말하는 보림을 해야 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깨쳤으면 나(我)라는 착을 완전히 뗄 수 있어야 돼. 

이제 떼어버려야 돼. 나(我)라고 하는 착을 떼어버려야 돼. 업장을 씻고 씻고 소멸해야 돼. 악과 습의 기를 뽑아버려야 돼. 그래야 완전히 해탈 되는 거예요. 완전히 해탈 했다? 아라한, 무루대아라한이 그래요.

거기가 완전 해탈한 자리예요. 거기에서 더 나아간 소식은 모든 종교가 깜깜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불교, 진짜 우리 부처님 불교는 깨달음 이후를 주~욱 말씀하십니다. 보살의 세계, 붓다의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많은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정말 우리 본래의 불교로 우리가 복원해가야 됩니다. 본래의 불교로 복원해가야 됩니다.

50분이 거의 된 것 같습니다. 무아(無我)라고 말씀하신 것은 방편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경에서 말씀했듯이 이 몸뚱이도 내 것 아닌 것이 분명하고, 이 생각도 내 것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하지만, 진짜 주인공이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그것을 진아(眞我), 앞에서 말씀했던 소위 자존자, 공(空),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맞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가지고 진짜 나(我)라고 안 합니다.

그것은 나(我)의 진짜 몸도 되고, 나의 근원, 당신의 근원, 저 모든 무정물의 근원도 돼.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닌 윤회의 주체가 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찰나생 찰나멸하는 그 생각의 흐름도 아니고,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아니고, 유식(唯識)에서 말하는 아뢰야식도 아닙니다. 식(識)이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몸뚱이를 지녀야 됩니다. 식(識)이, 영혼이, 혼이 몸뚱이를 지녀야 됩니다. 혼의 몸뚱이, 이게 윤회의 주체입니다. 이것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영혼체'그럽니다.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가 됩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됩니다. 

사람도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으면 몸뚱이가 있어야 ‘야! 참 구경할만 하네’ 그런다고요. 이 몸뚱이가 있고 눈이 있어서 그런다고요.

이런 오근․육근이 있어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다? 벌을 받는 몸뚱이가 있어야 돼. 식(識)이 어떻게 벌을 받습니까? 몸뚱이가 받는다고요 몸뚱이가. 하늘(천국)을 가고, 극락을 가서, ‘햐! 행복하다’고 느끼는 식(識)의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육근(六根)이 없이 육식(六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합해서 육식(六識)이 나오는 겁니다. 이 식(識)이 혼자 존립할 수 없습니다. 이 식(識)은 근(根)과 경(境)에 의해서 존립할 수 있는 거예요.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지금 인도의 석학들이 모여 있다고 합시다. 좋소! 당신 말이 옳소!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소. 윤회의 주체는 영적 실체인   '영혼체'입니다. 그래서 영혼체의 설명을 앞으로 주~욱해 갈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지옥에 갔어. 

그러더니 하늘로 천도를 해주니까 하늘로 가셨어. 그 몸뚱이, 그 몸뚱이가 가시더라 그거예요. 지금은 아버지가 성중하늘에 계셔. 그 하늘에 계시는 것은 그 몸뚱이에요. 얼굴만 조금 더 아름답고 청정하고 옷만 더 바꿔 입었지. 우리 아버지란 말이에요. 그 몸뚱이가 중요하다 그거요. 그 몸뚱이가 윤회의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 몸뚱이 안에 식(識)이 있어. 8식이 있고, 식(識)이 다 있어. 그 몸뚱이는 불성을 지니고 있어요. 나도 불성을 지니고 있고요. 그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래서 ‘비아윤회설(非我輪廻說)’과 ‘유아윤회설’을 주장합니다. 

이거 맞습니다. 만약 이러한 교설이 아쇼카왕 이후로 불교를 그렇게 선전했더라면 힌두교의 모든 국민들이 전부 흡수 되었을 거예요. 불교로 흡수 되지요.

그리고 모든 종교가 진짜 정법인 불교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 시간에 주~욱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을 수 없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이해하실 겁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전국에 계신 우리 1200만 불자들에게 권합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다라니를 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다라니를 하고, 염불을 하면 죽을 때도 편히 갑니다. 염불하고, 경전 읽고, 다라니를 하면 여생도 편합니다. 큰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염불하고, 경전 읽고, 다라니하고, 그리고 여러분이 지켜야할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면 여러분의 장래는 밝습니다. 다음생이 복될 것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공부를 하고,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짓고 하면 극락도 갈 수 있습니다.



스님 따라서 염불중에서도 염불이라고 하는 석가모니부처님 칭명을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終